나의 일기장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즉 상놈의 혐의가 완벽하게 입증이 되고 그 이후

대한민국에는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의 명으로 계엄이 선포되게 됩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입각하여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던 정승화 대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

그리고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이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을 받게 됩니다.

이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이 되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 보고 라인을

장악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전두환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이 되고 나 서

검찰총장, 중앙정보부, 치안본부(현 경찰청)의 수장 들을 불러 모아놓고

앞으로 모든 정보보고를 매일 아침에 자신에게 와서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를 하게 됩니다.

이로써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라인을 장악하게 되었으며

자신이 장악한 정보를 가지고 필터링(정제)을 통해 정승화 총장에게 필요한 보고만 하게 됩니다. 

 

 

 

 

 

 

 

10.26 사태에 대해서 대국민 기자회견장에서 느껴졌던 그의 모습은

단호한 어투, 살벌한 분위기로 국민들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군 내부에서는 박정희의 총애를 받는 양아들로써 잘 알려지긴 했지만

민간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군 내부 최고의 실력자가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 이셨습니다.

 

이 발표가 난 다음 날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서는 놀라울 만한 분석력으로

대한민국의 후일을 예언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정규 4년제 육사 교육을 받은 11기의 선두주자로써

그의 동기생들이 전방부대의 사단장으로 있으며

즉각 병력을 활용할 수 있는 요직에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라인을 장악함으로써 정승화 계엄사령관 보다도

더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실질적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자 이다.

 

마이니치 신문은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자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을 뽑음으로써

훗날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의 쿠데타 가능성을 예견 하였습니다.

 

이후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권력의 중심에서

자신이 위치하고 있는 합동수사본부장으로써의 권한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수사과정에서 나온 청와대 내부 금고에서 나온

8억원을 영애 이신 박근혜 대통령 님에게 전달하는 등 나머지 차액은 합동수사본부의 수사비로 활용

또 그 남은 차액을 정승화 계엄사령관에게 제출을 하는데

자신의 위치에서 도를 넘어선 월권을 저지른다고 합동수바본부장을 크게 혼내킵니다.

 

(개인적 견해입니다만 아무리 적법한 절차가 있고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는 수사 활동이라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세에서는 매우 인간적인 모습이 보여졌다고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도와줄수도 있었지만 청와대 내부금고에서 나온 금액을 국고로 헌납시키기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으로써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가 아닌 국가의 영부인으로써

그동안의 수고와 노고가 있었는데 그걸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이 후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의 월권 행위가 도를 넘어선다고 판단한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노재현 국방부장관에게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의 전출을 건의하지만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을 아주 좋게 보고 있었던 노재현 국방부 장관은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건의를 반려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계속적인 건의로 노재현 국방부장관은 김재규의 사형집행이 끝나고 나서

생각을 해보자고 하고 정승화 총장의 건의를 일단락 시키게 됩니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군을 완전히 재정비 할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라인이던

장태완 소장을 수경사령관으로 임명을 하게 됩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장태완 소장은 "야이 반란군 놈의" XXXX 라는 유행어를 남기신 분 입니다.

 

허화평 비서실장, 허삼수 인사처장은 이 낌새를 심상찮게 여기고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에게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대통령 시해현장에 있었던 현행범이므로

당장 체포를 해야 한다고 설득을 합니다.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그 설득을 받아들이기로 결정

하지만 절차 문제가 있습니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의 직속 상관이면서

영장 발부에 대한 권한은 육군참모총장 즉 계엄사령관에게 있습니다.

더불어 국가 계엄 상황하에 부하인 합동수사본부장이 계엄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재가가 필요한 상황에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자신이 동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맥을 활용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드디어 그 결사일이 찾아 오게 됩니다. 1979년 12월 12일

 

 

1979년 12월 12일

 

치밀한 계획을 세워 수도방위를 책임지고 있는

정병주 특전사령관(중장), 장태완 수경사령관(소장), 김진기 헌병감(준장)을 미리 술자리로 초대해

부대 지휘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묶어 놓고 일을 진행하게 됩니다.

 

 

 

대통령 사전재가를 받는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허삼수 대령과 우경윤 대령을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급파 해

강제로라도 체포를 미리 해놓고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가를 받는 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에게 체포사실이 미리 알려지게 된다면

지휘체계에 의해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즉각 손발이 묶이게 되므로

애초 당시 목표는 대통령 재가와 정승화 총장 체포의 동시 진행 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쉽게 풀리겠습니까.....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보고 체계를 무시한 이 상황을 받아 들일 수 없다며

노재현 국방부장관을 데려와서 보고를 하라고 지시를 합니다.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파견된 허삼수 대령과 우경윤 대령이 강제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는 동안

그 사이 육참공관에서 총격전이 일어난것을 알고

노재현 국방부장관은 자신들의 가족을 데리고 도망가기에 바쁩니다.

 이 행동은 훗날 12.12사태 재조사에서 엄청난 질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12.12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모임이 수경사령부 내부 장세동 대령이 부대장으로 있는

30경비단에서 이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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