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화사업 , 전두환 정부때 온순하지 못한 학생들을 강제로 모아 특별한 교육을 받게 한 것이 이 사건이며 그 이름은 바로 녹화사업이다. 즉 다른 말로는 제 5공화국 사건이라고 불린다. 이 사건은 학교 교내외에 집회를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목적이다. 박정희때도 녹화사업이 있었지만 그저 입대를 시키는데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건이 본격화된건 전두환 정부때였다. 전두환은 강제로 입대를 시킨 병사들중에 대학생일 경우 학교에 다시 돌아가 총 학생회와 각종 운동 시위에 참여하는 친구들에게 찾아가 정보를 캐오라는 쁘락지 역할을 하라고 시켰고 이는 녹화사업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1988년 12월 5공 청문회 당시>
이해찬 : 군에 징집된 학생들에게 휴가를 내보내서 다니던 학교에가서 정보를 캐와라 이러한 명령을 내린적이 있죠?
박준병 : 그런 사실이 있지만.. 스스로 하겠다는 학생도 있고 안하겠다는 사람한테는 뭐 부탁을 하기도 하고..
이해찬 : 군대에서 부탁이라는게 있습니까?
박준병 : .................................................................
녹화사업에서 심사라고 하는것, 이 심사는 1주일정도 진행이 되었으며 일인당 평균적으로 50장이 넘는 자술서를 쓰라는 협박을 당했고 이러한 과정속에서는 불합리한 구타 행위와 고문이 병행되었으며 우선 이 녹화사업의 대상자가 되면 강제적인 휴학과 입대지원이 자동적으로 이루어 졌고 해외로 도피할수 없게 금지령을 내렸다. 그 당시에 학생의 휴학을 결정할수있는 것은 지도교수 뿐이었다. 따라서 수사하는 사람들이 강제로 학생들을 끌고가 지도교수에게 허락을 받고 바로 군대로 넣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녹화사업으로 인해 강제로 입대를 했을 경우 육군은 최전방, 해군도 최전방 그리고 해병대는 제주도로 발령을 받았다. 이로 스트레스를 받아 강제 입대를 한 사람들중에는 월북을 하거나 동기생들을 죽이고 월북한 사건이 있었다. 이로 인해 전두환 정부 당시 녹화사업으로 인해 입대한 총 6명의 대학생들이 의문사를 겪은 일이 생겼다. 이렇게 입대를 강제로 당한 이들은 제대를 하고 나서도 학교의 보호를 받아야했기 대문에 나머지 학기를 전부 장학금으로 받았다고 한다.
또한 대표적으로 의문사를 당한 총 6명의 학생들을 추모하고자 고려대학교 광장에 비석이 설립되었다. 당연히 이 6명만이 피해자가 아니었지만 정부기관에서 도모한일이기에 정확한 피해자의 수를 알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후 5공청문회에서 이해찬의원은 녹화사업의 실무담당자 박준병을 청문회에서 개박살을 내면서 온국민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추악한 군사정권 시절의 강제징집, 그리고 프락치, 동료를 팔아넘거야 했었던 그 시절의 청춘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에 봄이 오고 민주주의가 온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들이 지켜낸 민주주의 속에서 사는 우리들의 여전히 개돼지다. 개돼지는 개돼지를 모신다. 우리 스스로 개돼지가 되지말자, 5월 9일 우리 손으로 개돼지를 만들어낼지, 진정한 이시대의 지도자를 만들어낼지는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