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기장

5.16일 군사정변 즉 5.16 군사쿠데타는 1961년도에 발생되었고 총 8지역인 서울, 대전, 광주, 김포, 부산, 부평, 수색 그리고 포천까지 쿠데타를 목표를 하여 일어난 유혈 사태가 일어난 군사반란을 뜻하는 말이다. 이 쿠데타의 총 책임자 및 주동자는 박정희였고 그 당시 그는 서울을 관할하는 사령관이었다. 당시 박정희는 미국으로부터 지방으로 쫒겨 났지만 참모총장의 뒤에서 몰래 군사를 모았다.



그 당시 김포 공수단에서는 1,000명, 해병에서는 1300명, 6관구에서는 1700명, 포병단에서는 3000명을 모았고 각종 지역에 있는 사단의 사단장과 참모들을 합하면 이 수가 거의 수만명 가까이 되었다. 제 2 공화국은 이 쿠데타를 진압할려고 했지만 서울에 있는 공병대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군부대가 이미 쿠데타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주한미군 또한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진압을 포기했다.



이 쿠데타는 그 당시 이승만과 여당의 장기적인 집권으로 인해 부정부패가 너무 심했고 그 당시 혼란스러웠던 사회와 군부적 이유가 서로 합쳐져서 생겨났다고 한다. 또한 그 당시 군대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왔지만 현실은 안타까웠다. 그들의 생계를 거의 아슬아슬하게 이끌수 있을 정도의 박봉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군대 특성상 진급할수 있는 기회까지 놓쳐버린 군인들의 불만이 엄청나게 커졌다.



이 쿠데타 요주 인물들은 입법과 사법 그리고 행정을 전부 다 장악하겠다고 선포하며 총 6개항 혁명공약을 선언하였다. 그 이후 군사정변에 성공을 쟁취한 박정희는 윤보선을 찾아 갔다고 했지만 윤보선이 통탄해하는 모습을 취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당시 미군이 쿠데타들을 진압하겠다고 취지를 보여주자 윤보선은 외부 간섭을 막고자 박정희의 군사 정변을 받아들였다.



현재 아직까지도 박정희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각각 다르다. 정치적인 성향을 보여서는 안되는 군대가 정치에 직접적으로 투입 되었다는 점에서 불법적인 행위이자 용서받지 못할 사건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 무능했던 정부와 부정부패로 인해 북한의 위협적인 태도를 묵살 시켜 다시 민주주의가 일어났다고 하는 시선도 있다. 말년엔 유신 헌법 선포로 인해 독재자라는 인식을 지울수는 없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한 이념정치, 대립정치를 끝내고 진정 대한민국의 발전길을 열었다는것에는 이견이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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