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기장

수지킴 (수지김) 간첩조작사건 유신독재의 서슬퍼런 압제가 끝나고 민주화가 도래하길 갈망하던 대중들은 또 다른 독재권력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독재는 민중들의 반발을 낳았고 결국 군부정권은 민중의 반발을 억제하고 독재에 대한 반동을 희석시키기 위해  반공이데올로기를 마구 휘둘렀다. 아직 전쟁의 포화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반공이데올로기는 효과적인 통제수단이 되었다  어떤 어젠더도 반공이라는 두글자앞에서는 동력을 상실하고 고꾸라졌던 것이다. 수지김 사건은 우리사회 반공이념의 추한 민낯을 여실하게 보여준 사건으로  국가 기관에 의한 가장 추악하고 비열한 사건으로 꼽힌다.




1987년 1월 2일 홍콩의 어느 주택에서 한 여성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이 여성의 이름은 김옥분. 일명 수지김 사건으로 불리우는 간첩사건의 시작이었다. 용의자였던 그녀의 남편 윤태식은 사건발생 3일뒤인 1월 5일 싱가폴의 한국대사관으로 인계되었는데 여기서 윤씨는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 사실 자신의 부인 김옥분은 조총련의 사주를 받은 간첩이며 자신은 부인과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납치되었다가 가까스로 탈출했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사실이라는 이는 대한민국 안보와 직결된 중대한 사건으로 명백한 대공사건이었다.



곧 안기부가 사건을 맡아 조사를 시작했고  이들은 이 사건을 '북한 공작원 수지킴이 한국인을 납북시키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 으로 발표했다. 곧 반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대중들은 북한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규탄하기 시작했고  다른 모든 이슈를 집어삼켜버렸다. 
이런 부분에서 당시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엿볼 수 있는데 이 말도안되는 시나리오에 대해 의심조차 못할만큼  당시의 대중들은 반공에 대한 트라우마에 함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는 법이다. 2000년 사회분위기가 바뀌면서 사건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던 이들이 팩트의 확인을 시도했던 것이다. 열어서는 안될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너덜너덜 걸레짝이 된지 오래였다. 결국 오래지않아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사건은 놀랄만큼 잔인했고 황당했다.  사실 수지킴 간첩사건은 부인을 죽인 한 살인범의 말도안되는 시나리오에 불과했으며  이 시나리오의 연출을 맡은 것은 다름아닌 안기부였다.



놀랍게도 안기부는 부인을 잔인하게 살해한 살인마에게 반공투사라는 타이틀을 안겨줬으며 남편의 손에 억울하게 살해당안 김옥분씨에게 간첩이라는 낙인을 찍었던 것이다. 이런사건을 보면 당시의 한국은 마치 거대한 손에 의해 움직이는 체스판같은게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들이 보기엔 국민들도 결국 체스판의 말에 불과했던 것일까? 사필귀정, 결국 사건의 진실을 밝혀졌고 뻔뻔한 살인마는 차디찬 감옥에 들어갔지만  이로인해 김옥분씨의 가족들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어머니와 오빠 언니가 세상을 등졌으며 여동생은 이혼을 당했다. 국가는 모든 조작사실이 드러나며 국가기관이 추악한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를 근거로 유가족은 42억의 위자료 지급판결을 이끌어 냈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반공,멸공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심도 토를 달아서도 안되는 전체주의적 사회분위기가 낳은 블랙코메디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며 억울하게 사망한 김옥분씨와 유가족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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