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1979년도에 발생된 12.12 사태와 5.17 군사 쿠데타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그 이하 단체들을 지배하기 위해 생겨난 임시 행정기구 였습니다. 1980년 당시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이 직접 이끌었으며 전국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 정보들이 모두 전두환에게 집중되게하기 위해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시키고 국가보위 비상기국을 설치 했습니다. 그 당시 국보위는 구조 특성상 대통령의 긴급조치를 동력시키는 비상기구 였지만 최규하 권한대행이 긴급조치는 불허한다. 국법 안에서만 해결하라고 강력하게 반대를 하자 보안사 내부에서는 다른 기획안을 만들어 제출합니다. 그리고 5월 31일 대통령 자문기구로 최규하 권한대행을 위원장으로 추대하는 동시에 국보위 선임위윈장으로 추대합니다.
위원회 조직은 총 행정부에 10명, 군사요직자는 14명으로 해서 총 24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그중 국보위 내부에서 실세중의 실세라고 불리우는 선임위원회는 주로 군출신이 즐비해서 실제로 대세기구 였다고 합니다. 국보위는 신군부가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목적설파를 했는데 안보강화, 경제난 해결, 정치 성장, 사회악 소탕을 외치며 삼청교육대를 개설해 실제 그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보여주기식인 목적이었고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부정축재자 척결이란 목적으로 김종필 구속, 김영삼 등의 야권인사 연금조치, 강제은퇴 등 정적들을 숙청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실질적으로 군부정치의 연장, 공포정치의 시작 이었던거죠
하물며 그 당시 연예계도 피해갈수 없었다고 합니다. 연예인 정화운동이란 명목하에 24명의 연예인이 현재 단어로 '블랙리스트'의 낙인에 찍혀 출연 금지를 당하고 나중에서야 풀려났다고 합니다. 전두환의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 K공작계획의 모태가 되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박정희 씨의 국가재건최고회의와 매우 닮아 있습니다. 일해재단과 미르재단, 왜 이 두 단어가 갑자기 떠 올랐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