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정부 사기극 금강산 댐 , 평화의 댐 사건
1980년대 그때까지도 반공을 국시로 삼고 국민을 반공 이데올로기로 몰아 넣었던 군부정권은 이를 이용한 대중선동을 가열차게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1986년 11월 정부의 대대적인 프로파간다로 등장하게 되는 소위 '금강산댐 사건'역시 그와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정부는 북한이 남한에 대한 침략 침탈을 위해 금강산 댐을 건설하는 중이라는 낭설을 퍼트렸습니다. 분노와 공포로 이성을 잃은 대중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저마다 반성없이 침략을 준비하는 북한정권을 성토하기 바빴습니다. 당시 대중들의 공포가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가 하면 서울 동대문 운동장에는 무려 10만의 인파가 운집했으며 한달간 무려 1000만명이 넘는 인원이 북한의 금강산댐 반대 규탄대회에 참여했을 정도였습니다. 그야말로 패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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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와같은 일련의 사건에서 가장 큰 이득을 취한 집단은 놀랍게도 당시 정부였습니다. 아이러니 하지요? 당시 정부는 이렇게 대중을 선동하여 반발을 잠재우는 수단으로 반공이데올로기를 자주 이용했습니다. 그 어떤 어젠더도 북한의 침략이라는 이슈보다 커다란 파괴력을 가질 수는 없었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볼 수도 없는 것이 당시 우리 국민의 3분의 2는 참혹한 전쟁을 겪은 전후세대였습니다. 그 불길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북한의 침략에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문제라면 이러한 트라우마를 이용하여 대중을 결집시키고 그 힘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정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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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집단이 반대로 공포를 부추기고 팩트를 왜곡했습니다. 결국 북한의 수공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우리는 평화의 댐이라는 방어 수단을 만들기에 이릅니다. 국민들은 십시일반으로 "적의 수공"에 맞설 방어수단 건설을 위해 모금활동을 하는 등의 힘을 보탰고 결국 87년 2월 28일 평화의 댐 건설이 시작됩니다. 훗날 200억 톤의 수공으로 서울이 전부 물바다가 될 것이라는 정부 주장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으나 이미 2000억이라는 예산이 낭비된 후였습니다. 과연 평화의 댐을 건설하기 위해 북한이라는 주적에 의한 공포가 필요했던 것일까? 아니면 셋팅된 어젠더에 의한 대중선동을 정당화 하기 위해 그럴듯한 조치가 필요했던 것에 불과한 것일까? 이 해답을 아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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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건 금강산 댐 사건은 엄청난 예산을 낭비시킨 희대의 코메디로 남게 되었는데 실제 88년 당시 워싱턴 포스트에서까지 "불신으로 인한 사상 최대의 낭비로 기억될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비꼬았을 정도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에겐 당시의 세대들과 같은 전쟁 트라우마나 무분별한 공포, 반공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우민화 프로젝트와 뻔뻔한 선동에 농락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팩트를 구분하는 냉철한 이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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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나오더군요. 선거나 국면전환이 절실할 때 한방씩 터뜨려 주는 북한 관련 사건들, 김현희 KAL기 폭팔사건, 그리고 황장엽 망명 등... 국민이 냉철함을 잃으면 정치는 개망나니가 됩니다. 이 나라에 다시 한번 희대의 막장 코메디, 개망신이 발생하는것을 원치 않는다면 모두 냉철한 이성과 용기를 가집시다. 그것이야말로 국민이 스스로의 권위를 높이고 정치가 국민을 위한 본래의 목적대로 쓰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