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기장

남영동 대공분실은 한국 경찰청 수사 기관이다. 이 남영동 대공분실은 1976년도에 건설되었으며 박종철을 고문했던 장소로 사회와 여론에 널리 퍼진 곳이다. 이 남영동 대공분실은 현재 용산구 한강대로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 남영역 바로 옆에 위치해있다. 이 건물은 총 2550평이고 7층으로 되어있으며 2층 부속 건물과 2층으로 되어있는 운동장이 있다.이 건물의 바깥쪽은 전부 검은 벽돌로 만들어 졌고 5층에 위치해 있는 취조실에 있는 창문이 정말 작다는 것이 이 건물의 상징이다. 이 창문이 작은 이유는 바깥과 소통을 배제시키며 고문을 한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이다. 이 건물안에는 15개의 취조실이 있고 15개의 취조실 내부를 감시할수 있는 카메라가 달려있다. 




이 취조실안에는 욕조, 변기, 침대, 의자와 책상이 있으며 문을 동시에 열어도 서로 볼수 없이 반대로 설계되었다는게 특징이다. 이 남영동 대공분실은 군사독재 시절 운동을 한 인물들을 고문한 곳이다. 이 취조실은 24시간내내 감시를 할수 있으며 인간의 인권이 무시된채 무시한 고문이 진행된 곳이었따. 1985년도에 김근태가 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전기와 물고문을 당했고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는 남영동 1985라는 영화이다. 이 시설이 공개된 계기는 박종철이 진술을 하여 그 당시에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그 당시 전두환은 이 시설과 고문 사실을 비밀리하기 위해 박종철이 나약한 사람이라 건드려도 죽었다는 발언을 해 당시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 그 당시 엄청난 고문으로 인해 죽었다는 사인들이 속출하자 이는 부검인과 수사인 둘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정부가 주장했다. 1987년도 5월18일 운동때 이 시설의 고문을 조작했다는 설이 폭로가 되면서 6월의 항쟁에 엄청난 힘을 실었다.




이 남영동 대공분실은 2005년까지 대공분실이라는 시설로 운영되어지다가 추후에 경찰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기관으로 탈바꿈 하였다. 또한 2008년도에 이 시설 자체에서 박종철을 기념하는 전시관을 열었으며 일반 민간인들에게 공개를 허용하였다. 현재 이 남영동 대공분실은 한국의 유산으로 기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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