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 일명 용팔이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역사적 사건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슬퍼런 전두환 시절 군부독재의 외부를 포장해 주기 위해 만들어진 정당의 이름은 “민주정의당” 민주주의와 정의를 목표로하는 정당이 사실은 민주주의의 정반대편에 서 있었다는 가슴 아픈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그러던중에 1984년 말부터 기괴한흐름이 시작되었는데, 전두환 정권이 거의 다 감금되거나, 정치활동이 제한되었던 수많은 야당 정치인들을 해금조치해준 것이 이 일명 “ 용팔이 사건”의 시작점 입니다. 그리고 사건은 빠르게 진전되어 신민당이 창당되고 다음해 1985년 2월, 그 역사적인 “신민당 돌풍”이 일어 납니다.
안기부의 벌어질 수 없다고 자신만만하던 야당의 돌풍이 거의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야당의 후보가 당선되던 그 선거는 전두환 정권의 간담에 식은땀을 흐르게 한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에 그 신민당의 와해공작이 발생되는데 미국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과 가택감금 중이던 김영삼을 대신하여 신민당의 총재자리를 맡았던 이민우가 그 공작의 주요 대상이 됩니다.
그 이후 1987년 4월 김영삼이 만든 통일민주당 창당대회 기간에 폭력배 조직원 200명이 전국의 통일민주당 서울 관악지구당 사무실에 대놓고 쳐들어가서 이들의 사무실 전체를 도끼로 찍어 부수고 쇠파이프와 각목을 들고 휘두르며 당원들을 폭행하는 모습들이 그 당시 전국에 생중계 방송이 됐습니다. 당시 대학생이던 지금의 40대층에겐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용팔이” 사건으로 아주 잘 알려져버린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은 전국의 최대 규모인 조직 전주파의 짓이었습니다. 그 당시 전주파 두목이었던 일명 “용팔이”인 김용남은 당시 37세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수사 경찰들은 정치 깡패로 이름을 떨쳤던 그와 신민당 청년부장을 1988년 9월이 되서야 수원의 한 호텔에서 특수 검거하였습니다. 당시 검찰은 이들에게 폭력사주를 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서둘러 사건을 일단락 시켰습니다.
하지만 1993년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이 다시 한번 이 사건을 재수사하였고 그 당시 장세동 안기부장이 혐의가 밝혀진 의원들에게 5억원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현재 “용팔이” 사건의 주요 인물인 김용남은 기독교 목회자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지만 이를 보는 시선은 여러가지입니다. 기독교 측에서는 용서해주는 시대이니 용서해주자는 시선과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한 사람이다는 시선이 섞여있습니다. 과거를 반성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용팔이 김용남 님 저는 당신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