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기장

글을 쓰기에 앞서 효순양, 미선양 삼가에 조의를 표하며 명복을 빕니다. 이어서 글 시작하겠습니다.... / 효순이 미선이 사건의 정식 명칭은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으로 불리며 이 사건은 2002년도에 발생되었다. 이 사건은 한국에 있는 주한미군이 조종하고 있던 장갑차로 인해 그 당시 어린 소녀들이었던 아이들이 압사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주한미군의 가장 치욕스러운 흑역사라고 불린다. 이를 계기로 인해 미국을 겨냥해 만든 노래가 생겨났다. 또한 그 당시 쇼트 트랙에서 안톤 오노의 부정행위로 인해 금메달을 쟁취해 한국 전국민들의 분노를 샀던 사건까지 포함하여 노래 가사로 표현되었었다. 이 노래는 그 당시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 모든 국민들이 미국을 반대하는 시위를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그 당시 1988년생이었던 그 아이들이 만약 현재까지 살아있었다면 성인이 되었을 나이였기 때문에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2002년도는 월드컵으로 한국 전체가 열광했던 것이 있었다. 당시 그 장갑차를 조종하던 미군들을 처벌해야한다는 서명운동까지 생겼다. 그 서명운동에 쓰였던 현장 사건 당시 사진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고 그 당시 뇌 전체가 으깨져 튀어 나왔기 때문에 모자이크 처리되었다.



이 사건이 발생된 그 날 바로 8군 사령관이 적극적으로 나서 이 사건을 수습하였다. 또한 보병사단 참모장까지 분향소를 찾아서 유가족을 달랬다고 했고 미군에서는 총 4억을 보상하였다. 하지만 죽음을 돈으로 무마하려고 한 미군의 책임자와 유가족이 만남을 가져야한다고 항의하였고 장례식이 끝난뒤에 면담을 가지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결국 만남은 이루어 지지 않았다.






당시 고강도의 훈련을 받은 미군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사고를 고의적으로 낼 가능성이 없다고 전문가들이 판단하였다. 그 이유는 엄청난 훈련을 거치고 정상적인 미군들이 우방국가인 나라에서 대낮에 일부러 이런 사고를 낼리가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결국 이 장갑차를 운전하던 미군은 장기복무를 하지 못하고 불명예로 전역하였다. 그 당시 이 사건이 크게 이슈화 되지 않았던 이유는 2002년 월드컵때 한국이 4강까지 진출했기 때문이다. 더욱 더 가슴이 아팠던것은 북괴빨갱이들이 연평해전을 일으켰을때도 그날은 월드컵 경기가 있던 날 이었다. 개돼지는 개돼지를 모신다. 그때도 그런말이 있었다면 전국민은 그렇게 생각했을것이다. 5월 9일 소중한 한표를 선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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