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기장

1994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뉴스가 전해집니다.

한양대 투수 박찬호 메이저리그 LA다저스와 계약 !!!!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촌놈이 모든 야구선수들이 꿈꾸는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로 직행을 하게 된것에

프로야구계는 말할것도 없고 온 대한민국이 들썩거렸습니다.

프로야구 열기가 한창이었던 때, 어느때보다 무더웠던 1994년 !!!!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렇게 박찬호란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무대에 오른지 얼마되지 않아 바로 마이너리그로 강등이 되었고

이 후 2년이 지난 1996년 화려하게 메이저리그에서 복귀식을 치른 박찬호 선수

대한민국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응원을 했고 박찬호 선수처럼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도

승승장구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후 찾아온 IMF외환위기......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구제금융을 받게 된 나라

그리고 기업도산에 따른 직장을 잃어버린 사람들 희망을 잃어버린 국민들

하지만 꿋꿋히 묵묵하게 미국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는 단 한명의 한국인

박찬호 선수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모두 극복하고 승승장구하는 박찬호의 모습

덩치 큰 미국인들 사이에서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박찬호 선수

서양인들에 비해 작은 동양인이 던지는 공 하나하나에 사람들이 열광을 하고

헛스윙을 하는 모습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자긍심과 자부심, 그리고 자신감을 얻어나갔습니다.

 

 

 

영웅은 역시 난세에 난다고 했었던 명언처럼 어느때 보다 어려웠던 IMF시대에

박찬호 선수는 우리들에게 큰 희망을 줬습니다.

 

박찬호 선수의 영향은 아니었겠지만 없었다고만 할수 없었습니다.

이후 우리나라는 이 후 IMF구제금융에서 벗어났고

최고로 짧은 시간안에 IMF에서 벗어났고 박찬호의 야구인생도 탄탄대로를 걷게 됩니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LA다저스에서 뛰면서 2001년 마감시즌에는 내셔널리그 올스타에 선정되기까지 합니다.

LA다저스에서 이후 2002년부터 뛰기 시작하면서 소위말하는 FA대박을 터뜨리게 됩니다.

 

 

텍사스에서 뛰었던 해 모두 연봉을 150억원 이상씩 받게 됐는데

그에 반해... 성적은 아쉬웠습니다.

 

 

 

이 후 꾸준히 승수을 쌓아올려 노모히데오가 가지고 있던 아시아 최다승 123승을 뛰어넘어

124승을 기록했습니다. 박찬호선수에 닦아놨던 길에 한국인 프로야구 선수가 연달아 연착을 하고 있는데

그 뒤를 이어 류현진 선수도 너무 잘해주고 있어 박찬호선수에게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124승을 쌓아올린 코리안 특급 박찬호 !!!!!!!

박찬호 선수는 단순히 기록만으로 존경받을만한 선수가 아닌 힘들었던 시절

우리와 함께 힘들어했고 그 속에서도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던 선수로써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영원히 기억 될 가치있는 선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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